설교가 말하는 것들
인도네시아의 한 섬 원주민들은 호박 호리병에 쌀을 채워 나무에 묶어두는 방식으로 원숭이를 산 채로 잡아요. 원숭이가 손을 넣어 쌀을 움켜쥐면 손이 빠지지 않는데, 쌀을 놓으면 도망갈 수 있는데도 끝까지 쌀을 놓지 않아 결국 잡혀가요.
이게 원숭이만의 문제일까요? 사람도 똑같아요. 시험을 망치고 후회하면서 다음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지만, 또 공부를 안 해서 후회를 반복하는 것처럼요. 우리도 과거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같은 죄, 같은 후회를 되풀이합니다.
사사기에는 명확한 사이클이 있어요: 범죄 → 하나님의 징계 → 부르짖음(회개) → 회복. 그런데 회복되어 평안이 찾아오면, 이스라엘은 또 같은 죄로 하나님 앞에 범죄해요. 이 사이클이 반복돼요.
1절의 "또"라는 단어가 핵심이에요. 사사기 1장부터 오늘 본문까지 이 단어가 4번 이상 등장합니다. 한두 번의 실수가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패턴이라는 뜻이에요.
이스라엘이 받은 은혜가 작아서 다시 죄를 짓는 걸까요? 아니에요. 가나안 왕 야빈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사람의 힘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적인 승리를 체험했어요. 하나님의 은혜는 절대 작지 않았습니다.
문제는 망각이에요. 평안에 젖으면 힘들었던 순간, 그때 받았던 기적 같은 은혜를 다 잊어버리는 거예요. 사람은 본질적으로 잘 잊는 존재거든요.
8-9절: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 다시 상기시켜 주셨어요 — "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…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." 이미 충분히 큰 은혜를 받았는데도 다 잊고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는 거예요.
10절: "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…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." 여기서 "또"라는 단어가 중요해요. 하나님은 이 말씀을 한 번만 주신 게 아니라 여러 차례 계속 말씀하셨어요.
출애굽할 때도, 가나안 정복할 때도, 범죄할 때도, 평안할 때도 — 하나님의 말씀은 끊이지 않고 계속 있었습니다.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 말씀 듣기를 거부한 거예요.
결론은 명확해요: 죄의 고리를 끊는 비결 =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. 말씀 안에 거했다면 은혜를 잊지 않았을 거예요. 그러나 말씀 듣기를 거부하고 삶에서 말씀이 사라지자, 반복적인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게 된 거예요.
| 말씀이 있을 때 | 말씀이 사라질 때 |
|---|---|
|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함 | 받은 은혜를 잊어버림 |
| 하나님을 의지함 | 나와 세상을 의지함 |
| 참 평안과 은혜가 넘침 | 슬럼프, 반복되는 죄에 빠짐 |
| 죄의 고리가 끊어짐 | 같은 죄를 계속 반복함 |
창세기에서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의 형체를 만드시고, 그 다음 생기를 불어넣으셨어요. 그래서 흙덩이가 살아있는 생령, 즉 사람이 된 거예요.
사람은 창조부터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지어졌어요.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을 때 참 평안과 은혜가 넘치도록 설계된 거예요. 그러니 말씀 가운데 거하지 않으면 삶에 문제와 슬럼프가 찾아올 수밖에 없는 거죠.